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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자 2018-07-23 15:15:02
제 목 El Condor Pasa (엘 콘도르 파사: 콘도르는 날아가고)
내 인생의 첫 노래다. 살아오면서 많은 노래를 배우고 또 불렀지만, 교회 찬송가를 제외하고 내가 세상에서 배운 노래, 아니 처음 가사를 다 외운 노래는 이 노래가 처음이다. 요즘엔 TV, 라디오는 물론, 휴대폰, MP3, CD 플레이어 등 음악 들을 수단이 무궁무진하지만, 내가 중학교 때만해도 라디오 말고 음악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LP 전축이나 카세트가 있긴 했으나 그건 부잣집 아드님이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나마 라디오마저 몸 져 누우면 내가 음악 들을 곳이라고는 친구네 집에 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A군은 단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항상 붙어 다녔다. 그에겐 형님이 한 분 있었다. 말이 형님이지 나이차가 워낙 많아 나는 그 분을 ‘형님아저씨’라고 불렀다. 형님아저씨는 남자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뽀얀 얼굴에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분이셨다. 적어도 내가 이 노래를 외우기 전까지는! 그 분은 당시 서울의 D 대학교 법대 다녔는데, 무척 똑똑했다. 대학교 가면 다 똑똑해지나 보다. 그 분 방에는 커다란 전축이 있었다. 형님아저씨는 내가 가면 노래도 들려주셨지만, 간혹 기분 좋으면 ‘영어 책 펴봐’ 하면서, 영문독해도 가르쳐 주시곤 했다. 가난한 동네다 보니, 과외 배울 곳도 없어서 – 아니 배울 곳이 있다 한들 갈 형편도 안됐지만 – 학교 갔다 오면 늘 A군 집에 놀러 갔다. 그 날도 난 형님아저씨 방문 앞을 기웃거렸다.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 반가웠다.
“예! 헤헤”

잽싸게 들어갔다. 친구도 물론. 형님아저씨가 우리를 위해 귤 몇 개를 사오셨나 보다. 귤을 까먹으며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형님아저씨가 말씀하셨다.

“팝송 한 곡 들려줄까?”
“예!”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예? 조건이요?”

약간 걱정이 됐지만, ‘까짓 거 뭐 어때?’ 하는 생각에 겁 없이 되물었다.

“그게 뭔데요?”
“가사를 다 외우고 집에 가야 한다.”
“예?”

형님아저씨의 표정은 엄격했다.

“만약 다 외우지 못하면 넌 이제 우리 집에 와서 음악 못 듣는다. 그것도 ‘영원히!’ 어쩌겠냐?”

황당했다. 난 형님아저씨가 그렇게 ‘잔인한’ 분인 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정말 실망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영원히’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의 모든 판단을 중지시켰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지 않았던가? 객기를 부렸다.

“그럼 다 외우면 ‘영원히’ 음악 들려주실 건가요? 약속만 하시면 오늘 다 외우겠습니다.”
“물론이지! 대신 외웠는지 안 외웠는지 받아쓰기 할 거니까 철자 하나만 틀려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딴소리 하지 마라”

체! 딴소리라니 나를 뭐로 보았단 말인가? 비록 내 나이 어려도 난 딴소리는 안 한다! 흔쾌히 조건에 응했다. 거래가 시작됐다.

가사를 적은 백지를 받았다. 열심히 그리고 꼼꼼히 다 외웠다. 받아쓰기! 당당히 임했다. 속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척 걱정했지만 거침없이 통과했다. 우하하!

“대단한데?”
“제가 한 번 한다면 하거든요! 헤헤”

자랑도 멈칫, 음악이 시작됐다.

El Condor Pasa (엘 콘도르 파사: 콘도르는 날아가고): 유투브 비디오 보기 (Paul Simon, Arthur Garfunkel 부름)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달팽이가 되기 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그래,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못이 되기 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그래,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A way I’d rather sail away (차라리 멀리 항해를 떠나고 싶어)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머물다 가버린 한 마리 백조처럼)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인간은 땅에 얽매여)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It’s saddest sound (세상을 향해 가장 슬픈 소리를 내지, 가장 슬픈 소리를)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길이 되기 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그래,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내 발 아래 대지를 느끼고 싶어)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그래,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형님아저씨의 얼굴을 보았다. 상기된 듯 했다. 연설이 시작됐다.

콘도르는 안데스 산맥의 독수리로, 잉카인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16세기 잉카 민족이 스페인의 침공으로 마추피추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음악이라 한다. 당시 잉카 민족은 생존을 위해 마추피추를 떠나, 그 보다 더 높은 절벽 위에 있는 후야나피추로 도피했지만, 스페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무참하게 정복된다. 그 후 잉카인들은 약 200년에 걸친 스페인의 폭정을 견뎌야 했다. 폭정은 1780년경 농민저항운동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저항운동의 맨 앞에는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e Gabriel Condorcanqui)가 있었다. 반란이 시작된 지 1년 뒤인, 1781년 그는 결국 체포되고 잔혹한 처형을 당한다. 오늘날 잉카인들의 후예인 페루(Peru) 사람들은 그가 죽어 콘도르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1913년 작곡가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Daniel Alomias Robles)에 의해, 그의 삶을 테마로 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가 작곡되는데, 이 노래는 바로 이 오페레타의 테마음악이다. 그 후 1960년대 미국의 남성 듀엣, 사이먼(Paul Simon)과 가펑클(Arthur Garfunkel)이 다시 불러 전세계에 히트 쳤는데,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곤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가사를 외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왔다. 밤 늦도록 노랫가락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내가 작곡하고 내가 편곡하면서, El Condor Pasa는 그렇게 내 온 밤을 하얗게 채워갔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을까 나이 스물을 넘기고, 서른을 넘기고…… 그렇게 부질없이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난 문득 형님아저씨의 안부가 궁금했다. 친구의 전화번호를 몇 다리 건너 간신히 알아내, 뒤돌아 보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친구의 음성은 변해있었다. 세월의 흔적일까, 많이 투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억양은 여전했다.

“나야!”
“야! 이게 몇 년만이야? 응? 어디야? 당장 보자!”

주말로 약속을 정했다. 약속 장소로 나갔다. 궁금했다. 얼마나 변했을까? 검정색 구두에 퇴색한 듯 보이는 청바지, 밝은 색 티셔츠에 검푸른 색의 자켓을 걸친 ‘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고마웠다. 대전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했다. 고속도로가 막혀 30분이나 늦었다며, 헤어지는 시간까지 수 차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20여 년이 훌쩍 넘은 세월,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깟 30분이 무슨 대수인가? 친구는 그랬다. 경우 바르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대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법원에 있다가 몇 년 전 대전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엄살을 부렸다. 내 전화 받고 며칠간 옛날 생각에 밥맛도 잃었다고 했다. 그래…… 내 맘이나 그 놈 맘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인가 보다. El Condor Pasa 얘기를 꺼냈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가 화제에 올랐을 때, 우리는 서로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웃었다.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가 먼저 말을 돌렸다.

“넌 영어를 무척 잘했지!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 칭찬은 다 네가 독차지했잖아, 그 괴짜 영어 선생님 기억나지? 늘 수업 들어오시면 한 번도 본적 없는 단어 몇 개 칠판에 적어 놓고 ‘아는 사람?’ 하고 물었지.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허공만 쳐다 보고 있을라치면, 항상 ‘저요’하고 손드는 사람은 바로 너뿐이었잖아. 그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하하하, 아마 넌 모를 거야!”
“자식! 사돈 남 말하고 있네, 그러는 너는! 중3때 영어경시대회 했을 때, 네가 대상 받은 것 벌써 잊었어? 난 그때 금상 받았잖아. 집에 가서 상이 금, 은, 동 3가지밖에 없는데, 내가 금상 받았다고 말하니까, 우리 할머니께 ‘내 새끼가 최고’라고 동네방네 엄청 자랑하고 다니셨지. 아마 할머니께서 금상 위에 대상 있는 것 아셨다면, 무척 실망하셨을 거야. 내가 끝까지 말씀 안 드렸거든? 그때 얼마나 양심에 걸렸는지…… 하하하.”

웃었다. 정말 얼마 만에 이렇게 속없이 웃어보는지, 속이 후련했다. 몇 차례 말이 오가다 우리는 문득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서로 묻지 않아도, 다음 화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형님아저씨, 어디 사셔? 한 번 찾아가 안부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지금 찾아가면 화를 내시지는 않으실지, 그래도 혼 날 각오하고 찾아 뵙고 싶어! 어디 사셔?”
“……”

시간이 멎은 듯, 친구의 안색이 순간 잿빛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친구의 시선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게 분명했다. 하긴 그 숱한 세월이 지나갔는데, 어디 예전 그대로이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급했다. 그리고 답답했다.

“왜 그래! 응? 무슨 일 있어? 혹시 어디 편찮으셔?”
“아니!”
“그럼 왜 그러는데……”
“후……”

긴 한숨이 허공을 맴돌았다. 친구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한 번 입술을 꽉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돌아가셨어.”
“뭐? 언제?”
“오래됐어. 그때 우리 고등학교 가면서 서로 이사 갔잖아, 그리고 나서 몇 년 뒤 형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시더라고. ‘더는 못 버티겠다’ 그러시더라. 내가 뭘 알아야지! 나도 형님 돌아가실 때쯤 돼서야 알게 됐어. 백혈병이 너무 심하셔서. 어쨌든 그 말씀 하시고 1년이 채 못돼 결국 숨을 거두셨어! 그 때가…… 그러니까 우리가 대학 2학년 때쯤이니까, 우리가 스물 한 살쯤 되었을 때야. El Condor Pasa 있지? 아마 우리 형님도 큰 새가 돼서 어느 하늘인지 몰라도 자유롭게 날고 계실 거야! 난 그렇게 믿고 있어.”
“……”
“참! 형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네 안부 물으셨어! 너랑 연락되냐고! 네가 그 노래 가사 다 외운 것 있지? 형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도 너 칭찬하셨어!”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밤이 깊어 갔다. 금년 겨울은 왜 이렇게 추운지, 친구와 나는 불평에 불평을 얹어 몇 번이고 겨울을 한탄했다. 밤 하늘을 바라 보았다. 하늘 저 멀리 무언가 검고 푸른 커다란 물체가 빠르게 지나가는 게 보였다. 눈이 나빠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콘도르였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그래! 아마 형님아저씨는 그렇게 자유를 찾아 떠났을 지도 모른다.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충혈된 눈이 유난히 슬퍼 보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잘 살자!”
“당연하지! 그리고 이제 자주 만나자.”
“다음에 만나면 형님아저씨 산소도 한 번 가자. 네가 안내해라.”
“그래! 아마 우리 형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
“자식!”

웃었다. 그렇게 웃고 또 웃었다. 어느새 우리의 입가에는 ‘형님아저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트위터에서 옮김, 20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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