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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월명암의 장엄한 일출. 암자를 창건한 부설거사의 생애
  
  부안 변산반도 월명암과 부설거사

평생을 붙잡고 풀려 해도 해법이 없는 난제가 ‘사는 게 뭐냐’는 화두다. 그래서 옛 선지식(善知識)들은 섬광 같은 찰나의 깨우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육신공양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치열한 투신수행 끝에 얻어지는 한순간의 마음 소리는 벽력같이 내지르는 외마디 ‘할’이었다. “절간은 부처 잡아먹는 곳이다.” 1300여년 부설(浮雪) 거사는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라면서 이렇게 읊었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賓客接待家勢竹)/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시세대로(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세(然然然世過然竹)”

가녀린 미풍에도 사각거리는 대나무에 인생을 견준 유명한 팔죽시(八竹詩)다. 대나무 소리 음운을 따라 ‘대로’ 읽은 재치와, 일상적 삶을 초탈한 도통 경지가 엿보이는 선시(禪詩)다. 국문학계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과 시장 모습까지 살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대 우리말 형태를 가늠해 볼 수 있게도 한다.
 

세파에 부대껴 마모된 흔적이 역력한 이 시를 쓴 부설거사는 원래 불국사에서 출가한 걸출한 스님이었다. 서기 647년(제28대 진덕여왕 1년) 서라벌(경주)에서 태어났으며 해동성사로 일컫는 원효(617∼686)·의상(625∼702) 대사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런데 왜 역사는 원효와 의상만 전면에 부각시키고 부설은 뒷전에 밀쳐 놓았는가. 그가 변산반도 봉래산 쌍선봉 아래 월명암을 창건한 큰 뜻은 무엇이었을까.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영지로 손꼽는 월명암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다툼이 없는 곳임을 강조한다. 지난 4월 발간한 ‘부설전(전북유형문화재 제140호)’을 내놓으며 130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부설의 속명은 진광세(陳光世)로 14세 때 불국사로 입산해 영조·영희 도반(道伴)과 함께 원정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6년을 공부한 셋은 뱃길로 중국 유학길에 나섰다가 표류돼 남해 바다에 정박하고 말았다. 전국 명산대천을 순례키로 마음을 바꾼 이들이 전북 김제군 성덕면 고현리(일명 부서울) 만경 뜰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앞을 가리지 못할 폭우로 재가신도 구무원의 집에 묵으면서 부설의 구도수행은 지각변동을 맞는다.

구무원에게 스무 살 된 절세가인의 딸 묘화가 있었는데 벙어리였다. 묘화는 부설을 보자마자 말문이 트이면서 전생에 풀지 못한 인연이 있어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와 부설에게 혼인을 승낙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했다. 부설은 ‘보살의 자비는 곧 중생을 인연 따라 제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허락하고 말았다. 영조와 영희는 부설을 비웃으며 오대산을 향해 수행 길을 재촉했다.

부설은 묘화와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고 진세(塵世)에 묻혀 10년을 살았다. 어느 날 부설이 권속을 모아 놓고 수도를 계속하겠다며 작별을 고하고 입산하였다. 서기 692년(신라 제31대 신문왕 12년) 탈속의 기상이 뚜렷한 이곳에 암자를 짓고 일념정진에 매진하니 오늘의 월명암(月明庵)이다.

“딸 이름과도 일치하지만 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서 월명암입니다. 산태극 수태극으로 굽이굽이 감싸안은 옥순 같은 군봉들로 환포를 이룬 곳입니다. 노령산맥의 서쪽 끝 변산반도의 지기가 우뚝 멈춰선 산상 최고의 양택지지요.”
  
 월명암 주지 천곡 스님은 “소납이 무슨 풍수를 알겠느냐”며 한발 빼더니 월명암 운해당 상량문을 ‘부설전’에서 찾아 보여준다. “수태극 산태극으로 감아 돌아서(水水山山)/기운차게 마물려진 곳 명당이 분명해(各各宛然)/ 가는 곳마다 주(主)가 되고 닿는 곳이 모두 진(眞)일세(隨處作主)/ 선객의 맑은 법규 길이 끊이지 않을러니(禪衲淸規)” 이곳은 틈 날 때마다 전국의 명풍수들이 다녀갔고 근대에도 한암·용성·서옹·탄허 대종사 등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며 찬탄한 명당이란다.

이런 자리서 좌청룡 우백호가 어떻고, 안산과 조산이 높으니 낮으니 운위하는 자체가 구차해져 버린다. 그래도 대웅전 방향은 확인해야겠기에 나경을 꺼내니 경좌(서→남으로 15도)갑향(동→북으로 15도)으로 정동향에 가깝다. 언뜻 서해낙조의 절경을 바라보는 월명암이 동향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천곡 스님의 산세 설명이 지독한 해무(海霧)로 보이지 않는 사신사를 짐작케 해준다.

“만학천봉을 뚫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월명암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산세 따라 동향을 놓아 대웅전 앞에서 붉은 해를 보고, 돌아서면 변산팔경 중 이경(二景)인 서해낙조와 바다안개를 품에 안을 수 있는 명당입니다. 부설거사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설악산 봉정암, 여수 향일암, 도봉산 천축사, 거제 보리암 등 명산기암에 자리한 사암에 오를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옛날 이토록 깊고 높은 산 정상에 목재나 기왓장을 어찌 운반하여 지었을까. 월명암도 변산에서 남여치를 오르는 최단거리가 1.7㎞로 1시간 30분이 걸리고, 내변산 능선(2.5㎞) 2시간, 내소사에서 넘어 오는 길(6㎞)은 3시간30분이나 걸린다.
오대산에서 20여 년을 수도한 영조·영희 스님은 불현듯 부설이 궁금해져 다시 부안을 찾았다. 속세의 인연 가운데 가장 얽맴이 심한 애욕연을 스스로 취한 부설이 어떤 몰골로 변해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들은 파계승 부설을 얕잡아 보고 있었으며 도력을 시험하려 했다. 그때 부설은 무문관(無門關)에 들어가 햇볕도 안 보며 10년 이상을 안거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영조와 영희를 맞은 부설이 아들 등운을 시켜 호리병 세 개에 물을 담아 처마에 매달도록 했다.

“문수보살이 머무시는 오대산에서 큰 도를 깨우치셨겠지…. 저 물병을 막대기로 내리쳐 병은 깨지고 물만 남아 있게 도력을 시험해 보세!” 영조와 영희가 차례로 내려치자 병이 깨지면서 물도 쏟아졌다. 그러나 부설이 내리친 물병은 깨졌지만 병 모양으로 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스님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과하려 하는데 부설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생사를 넘었네. 벌써 열반에 들려 했으나 자네들을 만나려고 여태 미루었네. 이렇게 만나 봤으니 육신을 벗고 이승을 떠나겠네.” 영조와 영희가 몇 번을 조아리고 참회하며 마음 돌릴 것을 간청했으나 부설은 등운과 월명을 부탁하며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읊조렸다.

“눈에 보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에 소리 없는 참소식을 들으니 시비가 끊이는 구나/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며 스스로 귀의를 하소”

기척이 없어 부설을 건드려 보니 이미 육신의 옷을 벗은 뒤였다. 이후 등운은 영희를 은사로, 월명은 영조를 은사로 득도하여 어머니 묘화와 함께 온 가족이 도통하는 불교사의 이적을 성취한다.

“월명암은 환난이 많은 절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소 이후 1908년에는 항일의병 근거지로 모두 불타는 비운을 맞습니다. 6·25 때는 여순 반란군이 진입해 화마에 휩싸이고…. 이번 불사에는 상수도 공사와 함께 화재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월명암에 몇 시간을 머무는 동안 훼방 놓던 해무가 비가 내리면서 걷힌다. 일출과 낙조는 다음에 보고 해무만 보고 가라는 대웅전 관세음보살의 묵시인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월명암 취재 길을 안내해 준 부안군청 문찬기 재무과장과 오성덕 홍보담당이 까닭 없이 미안해 한다.

하산 길 내소사 옆 지장암에 들러 주지 김일지 스님한테 들은 얘기다.

“저 월명암 불사는 천곡 스님의 황소 불심 아니면 엄두도 못 낼 대작 불사입니다.”

시인·온세종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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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12.08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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